건강한 삶

당뇨약이 수명연장에 항암효과까지

Rimm 2020. 1. 1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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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A9%94%ED%8A%B8%ED%8F%AC%EB%A5%B4%EB%AF%BC-%EB%8B%B9%EB%87%A8%EC%95%BD%EC%97%90%EC%84%9C-%ED%95%AD%EC%95%94%EC%A0%9C%EB%A1%9C

“처방전을 찍어뒀는데… 여기 있네.”

“어디 좀 봐요.”

“…”

“메트포르민 맞네요. 축하해요!”

“뭘?”

지난 연말 옛 직장동료와 저녁식사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대화 주제가 자연스레 건강으로 넘어갔는데, 이 분은 당뇨가 있어 약을 먹는단다. 문득 좋은 덕담거리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 약 이름을 물어보니 스마트폰에 찍어 둔 처방전을 보여준 것이다. 이 분이 복용하고 있는 당뇨약이 메트포르민이기를 기대했는데 다행히 그랬다. 그런데 뭐가 축하할 일일까.

지난해 미국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처음 노화지연약물 임상을 시작했는데, 그 약물이 바로 메트포르민이다. 메트포르민(metformin)은 1920년대 합성된 약물로 유럽에서 수백 년 동안 당뇨병 치료제로 쓰인 식물인 고트스루(goat’s rue)의 유효성분인 구아니딘을 변형한 분자다. 구아니딘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아직 인슐린 투여까지 가지 않은 전당뇨(prediabetes)인 사람들이 주로 복용하는 메트포르민은 연간 생산량이 3만 7000톤에 이르는 싸고 흔한 약이다. 3만 7000톤이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한 정이 500mg이므로 185억 정이다.

그런데 여러 동물실험에서 메트포르민의 수명연장효과가 관찰됐다. 메트포르민의 노화지연 작용메커니즘은 아직 불분명한데, 세포내 에너지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를 건드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염증을 억제하고 성장인자의 분비를 떨어뜨리고 산화로 인한 손상을 줄여 결국 세포노화가 지연된다.

미국 알버트아인슈타인의과대학 니르 바질라이 교수와 공동연구자들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아 TAME(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이라는 약자로 불리는 임상프로젝트를 시작했다. 70~80세인 3000명을 대상으로 5~7년에 걸쳐 실시될 예정이다. 연구자들은 이 임상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는데, 근거가 없지도 않다.

즉 2014년 학술지 ‘당뇨, 비만, 대사’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메트포르민을 꾸준히 복용한 당뇨병환자들의 사망률이 다른 약물을 복용한 환자는 물론 대조군(당뇨병이 없는 사람)보다도 낮았다. 당뇨병환자의 기대수명이 수년 짧은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현재 메트포르민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수명연장효과를 덤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궁금해 하는 그 분께 이런 얘기를 해줬더니 무척 기뻐했다. 필자도 옆에서 “나도 좀 나눠줄 수 없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며칠만 더 늦게 만났어도 또 다른 희소식을 들려줄 뻔 했다.

메트포르민이 항암제로도 유력하다는 연구결과가 지난해 12월 23일자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렸기 때문이다.

암세포 배양액에 시로신코핀만 넣거나(왼쪽에서 두 번째) 메트포르민만 넣을 경우(왼쪽에서 세 번째) 약물을 넣지 않을 때(맨 왼쪽)와 차이가 없지만. 두 약물을 함께 넣어주면 세포사멸이 일어나는 합성치사효과를 보인다(맨 오른쪽). ⓒ 사이언스 어디밴시스

혈압약과 함께 쓰자 합성치사효과 나타나

논문을 보면 메트포르민의 항암효과는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알려진 것 같다. 메트포르민을 장복한 당뇨환자들이 암에 걸릴 위험성이 현저히 낮다는 역학(epidemiology)조사결과가 여럿 나왔기 때문이다.

메트포르민의 항암효과 역시 미토콘드리아의 효율을 떨어뜨리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즉 세포분열이 왕성한 암세포는 포도당에 늘 굶주리는데 메트포르민이 혈당을 낮추고 암세포의 세포내호흡도 방해해 증식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뇨약으로 먹는 수준으로는 메트포르민이 항암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꽤 된다. 즉 고농도일 때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부작용이 거의 없는 저농도에서는 항암제로서는 자격미달이라는 것이다.

스위스 바젤대 연구자들은 메트포르민에 ‘합성치사’ 개념을 도입해 저농도에서도 항암제로 기능할 수 있을지 조사해보기로 했다. 합성치사(synthetic lethality)는 거의 100년 전 소개된 유전학 용어로, 어떤 생명체에서 유전자A가 고장 나면 살 수 있고 유전자B가 고장 나도 살 수 있지만 둘 다 고장 나면 죽는 경우를 뜻한다. 그 뒤 합성치사의 개념이 확장돼 약물A나 약물B만으로는 암세포가 안 죽지만 둘 다 투여하면 죽는 경우도 뜻하게 됐다.

연구자들은 저농도의 메트포르민(약물A)이 암세포를 죽인지 못한다고 치고 약물B를 찾기로 했다. 1120가지 약물을 조사한 결과 딱 하나에서 합성치사 효과가 관찰됐다. 바로 고혈압치료제인 시로신고핀이다. 1950년대 합성된 시로신코핀(syrosingopine)은 혈관 주변의 신경전달물질을 없애 혈관수축을 억제한다.

암세포 배양액에 메트포르민만 넣을 경우 30밀리몰농도(mM)가 돼야 암세포의 절반이 죽었지만 시로신코핀을 같이 넣어주자 2mM로도 절반이 죽어 농도가 15분의 1로 줄었다. 이는 당뇨약으로 먹을 때 수준이다. 그렇다면 약물B(시로신코핀)는 암세포에 어떤 작용을 해서 합성치사효과를 낼까.

먼저 혈압약 작용은 아니었다. 시로신코핀과 비슷한 항혈압 메커니즘을 지닌 약물을 넣어준 경우에는 메트포르민의 합성치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시로신코핀의 분자구조를 면밀히 조사했고 그 결과 이 약물이 알파-에놀라아제(α-enolase)라는 효소에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α-에놀라아제는 포도당을 분해해 에너지 분자인 ATP를 만드는 해당과정에 관여하는 효소다. 즉 메트포르민의 미토콘드리아 호흡작용 저해와 시로신코핀의 α-에놀라아제 해당작용 방해가 합쳐질 때 암세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배양 세포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시로신코핀은 α-에놀라아제에 달라붙지만 그 작용을 방해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메트포르민과 시로신코핀의 합성치사효과는 확실하지만 그 메커니즘은 아직 모른다는 말이다. 만일 메커니즘도 밝혔다면 논문이 자매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가 아니라 ‘사이언스’에 실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논문의 저자들은 실제 생물체의 암세포에서는 시로신코핀이 α-에놀라아제의 작용을 방해해 합성치사효과를 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미토콘드리아가 부실해져 취약해진 암세포가 포도당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아포토시스(apoptosis)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사멸한다는 것이다. 반면 정상세포는 이 대사경로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약물이 저농도일 경우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위의 추측을 뒷받침하는 실험결과도 있다. 많은 종류의 암세포에서 두 약물의 합성치사효과가 나타나지만 유독 감마(γ)-에놀라아제가 과잉으로 발현하는 몇몇 암세포에서는 힘을 못 쓰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γ-에놀라아제는 해당과정에서 α-에놀라아제와 같은 작용을 하는 효소로 주로 뇌에서 발현된다.

그런데 시로신코핀은 α-에놀라아제와 구조가 꽤 다른 γ-에놀라아제에는 달라붙지는 못한다. 결국 시로신코핀이 암세포의 해당과정을 방해하지 못해 합성치사효과가 나타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메커니즘은 아직 불확실하지만 두 약물 모두 수십 년 동안 별 문제없이 쓰여 왔다는 걸 생각하면 이번 실험이 부작용은 거의 없으면서도 효과적인 항암약물치료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당뇨와 고혈압으로 메트포르민과 시로신코핀을 함께 복용하고 있는 사람은 ‘부작용’으로 수명연장효과와 암예방효과를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번에 그 분을 만나면 시로신코핀도 복용하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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